바이오 기업으로 기사회생한 필름 카메라 업체, '코닥' 이야기

정우현 / 기사승인 : 2020-07-31 08: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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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물자생산법에 따라 코닥에 7억6500만달러(9176억원)의 대출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코닥은 이 돈을 받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치료제라고 칭찬한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을 포함한 복제약품의 원료를 생산하기로 했다.

 

코닥의 설립과 성장과정

코닥(Kodak)은 필름 제조업체로 호기심 많은 한 사진 애호가의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시작됐다. 회사의 이름은 창업자 '조지 이스트만'의 이름을 따서 '이스트만 코닥'이라고 지었다. 1882년, 뉴욕 로체스터 은행 서기였던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 1854년 7월 12일 ~ 1932년 3월 14일)이 현대식 필름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 내고, 1883년에는 세계 최초의 감광필름을 만들어내 이것을 양산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카메라 크기 = 전자렌지 크기'

1878년 조지 이스트만은 휴가 계획을 세우면서 휴가 기간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자고 동료들과 뜻을 모았다. 하지만 이당시 사진기는 크기와 무게가 전자렌지 크기와 비슷했다. 거기에 화공약품과 유리판같은 별도의 촬영 장비까지 옮기려면 사람 두 셋이 들고 가야 했다.



이스트만은 이런 무거운 장비가 필요하다는 걸 듣고 좀 더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그는 보다 간편하게 사진을 촬영하고 인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에 몰두했다. 체계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그에게 유일한 스승은 영국에서 펴낸 사진 관련 잡지 뿐이었다.

 

 

감광필름 개발, 휴대용 카메라 상용화

3년간의 실험 끝에 이스트만은 필름의 초창기 형태인 건판(乾板)과 이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사업가 헨리 스트롱과 손을 잡으면서 그의 발명품은 상용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1883년 젤라틴 코팅된 종이를 롤에 감은 새로운 형식의 감광필름 개발되었고, 1888년 최초의 휴대용 카메라가 시판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1912년 코닥은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연구소를 세우고 영국의 사진학자 케네스 미스박사를 소장으로 영입하면서 또 한 차례 도약을 맞는다.

 

 

코닥의 성장에는 종업원에 대한 창업자의 남다른 배려도 큰 몫을 했다. 이스트만은 창업 초기 종업원을 정당하게 대우하며 이윤은 사업확대에 재투자한다는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경영 이념을 세웠다. 현재 코닥의 종업원 복지안내 팜플렛은 무려 245페이지에 달할 정도였다.

 

일생 동안 사진기술 개발과 종업원들의 복지 향상, 회사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신념을 지킨 이스트만은 매우 독특한 죽음을 선택했다. 77세때인 1932년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다. 그는 “친구여 나의 일은 모두 끝났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는 말을 유언장에 남겼다. 그리고 전 재산을 로체스터 대학에 기부했다.

 

뒤따르던 후발주자 후지

코닥은 1888년 설립된 이후 100년 이상 필름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전성기였던 1976년 코닥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필름 분야 90%, 카메라 분야 85%에 달했다. 그런 점에서 1934년 일본 최초의 영화용 필름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후지필름은 코닥을 쫓아가기에 바빴다. 후지필름은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올림픽의 공식 후원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저가 공세로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가면서 겨우 코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코닥의 쇠퇴와 파산

전세계 필름 시장을 벼랑 끝으로 몰아 넣은 디지털 카메라는 사실 코닥에서 나왔다. 코닥은 1975년 필름 카메라를 대체할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했고, 1979년엔 ‘2010년 시장은 디지털 카메라로 전환된다’는 보고서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디지털 카메라는 가격이 비싸 주로 잡지와 신문 업계 전문가들에 의해 사용됐다. 2000년까지도 필름 수익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필름 업계는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한때 필름 카메라 시장에선 ‘코닥 모멘트(Kodak Moment)’라는 말이 사용됐다. 사진을 찍고 싶을 때 코닥이 필요하다는 말로, 그만큼 코닥의 위세가 컸다는 걸 방증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닥이 되다(Being Kodaked)’는 말이 많이 쓰인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다 사라져 버린 기업이라는 의미다.





'화학' 기반 인프라 덕에 바이오기업으로 변신

2020년, 코닥이 기사회생했다. 1880년대 설립돼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시대의 황금기를 연 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코닥이 바이오기업으로 변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코닥 주가는 급등했다. 시간외 거래에서 주가는 더 올라 주가는 11달러를 넘어섰다. 장외거래에서 코닥 주가는 50% 넘게 상승했다. 이로써 코닥의 시가총액은 1억1500만달러(1379억원)에서 3억4700만달러(4162억원)로 두 배 이상 뛰었다.

 

 

WSJ는 "코닥이 미국 방산법(Defense Production Act)에 근거해 7억6500만 달러(약 9200억원)를 융자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자금은 다양한 전염병을 치료할 약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빌려주는 돈이다. 코닥은 이 프로그램의 첫 수혜자다. 자금 지원을 맡은 곳은 미 정부가 설립한 국제개발금융공사(USIDFC)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닥은 복제약품 원료를 생산할 뿐 아니라, 가격경쟁력이 있고 환경적으로도 안전한 수많은 약에 들어가는 구성요소를 만들게 될 것"이라며 "의약품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되찾아오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방물자생산법을 토대로 코로나 팬데믹(전세계적 대유행병)을 퇴치하기 위한 전략물자의 국내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에 재정 지원을 하도록 명령했다.



코닥의 짐 콘티넨자 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코닥이 가진 폭넓은 인프라, 화학 제조에 대한 전문성, 혁신과 고품질의 역사를 통해 미국이 의약품 공급망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닥은 의약품 원료 제조 분야가 앞으로 전체 사업에서 30~40%의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닥은 20년 간 유지되던 필름 사업의 높은 수익성에 안주해 2007년 스마트폰의 출현과 동시에 급변한 시장에 대응할 타이밍을 놓쳤고 2012년 파산신청을 했다.



미국이 코닥을 지원하고 나선 건 중국에 대한 의약품 원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미 정부는 작년 보고서에서 중국 제조업이 흔들릴 경우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미국에서 의약품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미국은 2017년 기준 중국으로부터 39억달러(4조7000억원) 규모의 의약품 원료를 수입했는데, 1년 전 보다 25%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를 계기로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문제로 지적되자 정부가 나서 공급망을 미국으로 되돌리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코닥 해체 당시의 기억들

미국 뉴욕주 북부에 위치한 로체스터시에서는 90여년간 코닥의 영광을 상징해온 빌딩 한 채가 해체됐다. 1923년 건립된 이후 전 세계 광학기술의 요람 역할을 해온 8층 높이의 ‘코닥 53빌딩’에 100파운드의 다이너마이트를 설치, 18초 만에 해체시켜버린 것이다. 비록 100년 가까이 된 건물이지만 지진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구조학’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물을 해체한 이유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이 건물은 2년반 넘게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돼왔다.

 

건물만 해체한 것이 아니라 코닥이 보유한 300여개의 특허들도 쪼개서 팔려나갔다. 하지만 코닥은 회사를 되살리지 못하고 결국 2012년 1월 19일 파산보호(챕터 11)를 신청했다. 파산 신청을 한 다음 달인 2012년 2월에는 코닥의 자존심이었던 할리우드의 ‘코닥 극장’ 이름도 팔았다.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이 곳은 과거 필름시대의 왕좌였던 코닥의 영광을 상징했지만 이름 값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코닥은 이후 약 1년 반동안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마치고 2013년 9월4일 법정관리 종료와 함께 다시 출발했지만 여전히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에는 실적부진으로 주가가 11%나 빠지기도 했다.



이날 ‘코닥 53빌딩’의 파괴를 지켜본 회사 관계자는 “이번 해체가 코닥의 새로운 출발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회사측은 코닥 재건계획에 따라 건물 잔해더미를 해체한 후 ‘53빌딩’ 부지에 바이오 연료와 플라스틱, 태양열 전지 등 에너지 관련 신사업 추진을 위한 클러스터를 추진하기로 했다.

 

 

‘스냅샷 시티(Snapshot City)’라는 별명이 붙은 로체스터도 코닥의 그늘을 지우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이테크 기술로 이름 높은 로체스터대학을 연구 거점으로 삼아 코닥이 배출한 고급 기술인력이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뉴욕 로체스터 거리 가보니…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스테이트 거리 343번지. 세계 최대 필름 제조업체인 코닥(Kodak) 본사가 우뚝 서 있는 거리는 음울했다. 잿빛 하늘 때문만은 아니었다. 코카콜라, 월마트 등과 함께 미국을 상징해온 기업 코닥이 올해 초 파산보호 신청을 한 뒤 스테이트 거리의 인파는 몰라보게 줄어들었다

 

롤필름, 컬러필름, 코닥카메라와 같은 독보적 기술 개발을 주도해온 코닥은 1970년대 미국 필름시장의 90%, 카메라 시장의 85%를 점유했던 공룡기업이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코닥의 순간(Kodak moment)이라고 합니다'가 코닥의 전성기 시절 세계에 울려 퍼진 광고문구다. 하지만 1980년대 디지털 기술이 도래한 것을 과소평가했다가 치명타를 맞는다.

 

 

코닥은 몰락했지만, 로체스터에는 코닥의 화려했던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코닥을 창립한 사진기술자 조지 이스트먼(Eastman, 1854~1932)의 저택을 사진필름박물관으로 개조한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는 사진작가들은 물론 로체스터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관광명소다.

[뉴스퍼블릭=정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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